존재엔 구분이 없고,
사랑엔 구별이 없다.
이건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다. 다만 그 모양만 다를 뿐. 마치 물이 담기는 대로 변하듯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은 <판의 미로>, <퍼시픽 림>, <헬 보이> 등 독창적인 상상력과 이미지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이다. 이것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 등등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들을 받았다. 개봉 때부터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계속 봐야겠다 했는데, 이번에야 보게 됐다. 역시는 역시였다.
이 영화는 한 여자의 일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여자는 말 못하는 장애가 있다. 하는 일은 항공우주 관련 연구를 하는 기관의 청소부다. 영화에서는 하대 받는 직업으로 표현된다. 여자이고, 장애가 있으며, 변변치 않은 직업을 가진 존재다. 그런 여자에게 일상을 뒤흔들 사건이 발생한다. 남미 바다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괴생명체가 그곳으로 왔다. 여자와 이 괴생명체는 곧 교감을 하고,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란 곧 영화같은 일이니, 이것은 이제 영화가 된다.
이 영화의 서사는 사실 단조롭다. 굉장히 교과서적으로 쓰였다.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이 한 사건으로 영화적 전환을 맞게 되고, 그 안에서 사건이 발생하며 영화적 재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이 영화도 괴생명체가 신변의 위험을 받자 주인공 엘라이자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이를 구출하고 같이 지내면서 생기는 사건들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여기에 적절한 악역과 조력자의 배치로 극의 재미를 더한다.
사실 이 영화는 서사의 재미보다 시각적 재미가 크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장점이 바로 영화적 표현인 만큼, 이 영화에서도 그의 상상력이 어떻게 영화적으로 표현되는지를 관심 갖고 보면 더 재밌는 영화 감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면, 존재엔 구분이 없고 사랑엔 구별이 없다는 걸 느끼며 영화의 여운에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4
물은 모양이 없다.
세상은 제각각의 모양이 있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양이 없는데,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은 저 모양, 이 사람은 이 모양, 이 감정은 이 모양이어야 하고, 저 관계는 저 모양이어야 하고. 그렇게 구별짓고 구분짓는다. 그것은 갈등이 되고 혐오가 되어 흠집을 낸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소외 받는 모양을 지닌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결국 부여 받은 모양에서 나와 서로가 서로의 흠집을 치유한다.
그 치유제는 '사랑'이다. 물은 담기는 대로 그 모양을 갖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아! 사랑 역시 그런 거구나" 싶었다. 인간과 괴생명체의 사랑, 심지어 이들의 육체적인 결합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이지 않나. 하지만 영화는 이를 설득한다. 인간과 괴생명체라는 모양을 벗어던지고, 존재 대 존재만 있을 뿐이다. 인간은 괴생명체를 사랑함으로써 그 모양이 되고, 괴생명체는 인간을 사랑함으로 그 모양이 된다. 아마 그것이 사랑의 기적일 테다.
우리의 갈등은 대개 사랑하는 사람과 생긴다. 부모, 형제, 연인 등. 이 갈등의 8할은 내 모양의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일 테다. 혹은 반대의 경우이거나. 사랑은 물과 같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바라는 사랑이 네모였어도, 상대방의 사랑이 동그라미라면 서로 다른 통에 그 사랑을 옮겨 담는 배려가 있어야지 않을까. 사실 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참 모든 실천이 그렇듯 이것 역시 실천하기 어렵다. 영화를 보면서 잠시나마 내 아집을 내려놓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