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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은 진실을 침묵시킨다 : <더 헌트>(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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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e516 2024. 2. 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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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헌트
사회 공동체의 집단 본성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전세계를 사로잡은 2013년 1월, 최고의 수작!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유치원 교사 루카스는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며 아들 마커스와 함께 하는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카스를 둘러 싼 한 소녀의 사소한 거짓말이 전염병처럼 마을로 퍼지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불신과 집단적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평점
8.8 (2013.01.24 개봉)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매즈 미켈슨, 토마스 보 라슨, 수세 볼드, 아니카 베데르코프, 라세 포겔스트룀, 안네 루이즈 하싱, 라스 란데, 알렉산드라 라파포트, 세바스티안 불 사르닝, 비야느 헨릭슨, 올레 두폰트

파편화된 사실 속에 파묻힌 진실, <더 헌트>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님을, 이 영화는 끊임없이 사실과 진실의 관계를 의심케 한다.

 

영화 <더 헌트>(2012)는 '거짓'과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다. 거짓이 마치 진실인냥 기능하게 됐을 때, 개인은 어떻게 집단의 폭력에 무기력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이런 주제 의식을 갖는 영화는 제법 많다. 전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려 2년이 넘게 사회의 멸시를 받는 과정을 그린,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6). 황우석 박사의 거짓을 폭록하는 기자에게 가해지는 집단의 폭력을 그린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2014)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선 두 영화는 확실히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주인공의 편으로 만든다. 하지만 영화 <더 헌트>는 다르다. 이 영화는 모호한 정황만을 보여주며, 주인공이 말하는 사실 역시 진실일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어딘가 모르게 찝찝한 구석이 있으나, 그 지점이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더 헌트>는 이혼 후 고향으로 내려온 루카스(매즈 미켈슨)가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추악한 범죄자로 낙인찍힌 루카스는 마을 사람들의 모멸을 받는다. 영화는 거기서 벌어지는 집단의 폭력을 이성적으로 그려내며 관객의 감성을 건드린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루카스의 무죄를 먼저 선언하며, 관객들이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게 한다. 관객은 우리 불쌍한 루카스가 누명을 썼다고 생각하며 그가 겪는 고초에 몰입하게 된다. 이는 마치 히치콕이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방법과 유사하다. 히치콕은 긴장감을 배가 시키기 위해 범인을 먼저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관객은 모든 정보를 인지하지만 영화 속 인물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떠한 간극이 발생하는데, 이때 서스펜스가 형성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루카스를 믿고 도와주는 그의 아들 마르쿠스(라세)의 상태가 되어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쿠스처럼 루카스를 옹호하기엔 몇 가지 석연찮은 부분들이 있다. 일단 사건의 발화자가 아이라는 점이다. 루카스의 성추행 사실을 고백한 인물은 유치원생인 클라라(아니카)이다. 영화는 "아이는 거짓말하지 안는다"는 말을 강조한다. 이는 오히려 아이가 거짓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우리는 아이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아이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모순성은 아이가 가지는 순수함에 기인한다. 성인이라면 거짓말의 의도가 확실하니,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가 쉽다. 하지만 아이의 순수함은 모호하다. 그렇다면 클라라는 자신의 애정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에게 시기심(유아의 파괴적 충동의 표현)을 느껴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면 정말 추행을 당한 걸까? 아이가 발화자가 됐을 때 오는 불확실성은 이 영화를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의 제목은 '사냥'을 의미하는 <더 헌트>다. 주인공 루카스는 이성의 광기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에게 사냥감에 불과하다. 루카스는 자신의 무고함을 필사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사냥감의 언어는 공허할 뿐이다. 자신의 이성을 신롸하는 마을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은 것만을 추종한다. 의심은 없다. 이는 곧 우리의 처지이기도 하다. 영화는 우리를 하나의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으로 몰아간다. 우리의 이성은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며 더 이상의 의심을 치운다. 의심이 사라진 맹목성은 분노만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루카스에게 분노하는 것처럼, 관객은 마을사람들에게 분노한다. 파편적인 정보들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의 태도 역시 그렇지 않은지. 단편적인 사실들이 이성을 혼란하게 만들어 진정한 진실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영화 <더 헌트> 는 질문을 던진다.